1일, 2016년 10월 오늘부터 내 경력에서는 처음으로 프리랜서에 도전한다.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 지금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는 동생의 소개로 일하게 되었다. 프리랜서 한명이 급하게 나갔다고 한다. 그럴 만큼 뭔가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런 것 따질 상황이 아니다. 아무튼 오늘부터 출근했다. 출근 전에 나를 고용한 용역(?) 업체에 들러서 노트북 한 대를 빌렸다. 프리랜서를 하려면 개인 장비가 필수적인데 나는 맥북 뿐이고.. 전자정부 프레임워크나 다른 환경들을 서로서로 맞추려면 윈도우를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빌리기로 했다. 다음 프리를 또 하게 된다면 미리 윈도우 환경으로 하나 맞추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판교까지 노트북을 빌리러 갔다. 판교는 정말 출근시간에 교통 지옥이더라. 나중에 판교 출근을 해야 된다면 다시 생각을 해봐야할 듯 하다. 판교의 교통을 뚫고 노트북을 빌린 후 강남의 어느 대기업으로 갔다. 첫 느낌부터 건설 쪽 회사라 그런지 회사가 군대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경비아저씨는 있으나 마나 한 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잠시 화장실 들리러 온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화장실을 안내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해도 절대 막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출입 통제 시스템도 전혀 없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출근하니 이사람 저 사람 인사를 시켜줬다. 나는 그냥 어차피 내 상사도 아니니까 쿨하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새로 사람이 들어오면 여기 대기업 PM이 내 업무 환경을 세팅해 줘야 하는데 오후 3시가 다되도록 바쁜척하다 해주지도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기 보안 시스템이 있어서 그 시스템에 로그인 하지 않으면 인터넷 등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세팅이 끝났고 나는 소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정부프레임워크, 스프링, 이클립스 조합은 정말 별로인 것 같다. 그 중에 이클립스가 최악이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내일은 8시까지 여기로 바로 와야 하는데 6시에 일어나야 할 듯 하다. 지각 안하려면 일찍 자야겠다.

2일, 오늘 드디어 2일차다. 예정대로 6시에 일어나서 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 3호선 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또 갈아타고 강남의 어딘가로 출근했다. 한시간 보다 약간 더 걸리는 것 같다. 7시 50분 쯤에 출근했는데.. 아무도 없다. 이럴 수가!! 아무도 출근 안했다. 8시 10분 쯤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건 뭐 출근 시간도 안 지키니 퇴근 시간도 안 지키지. 아무튼 이렇게 둘째 날이다.

오늘은 나에게 일을 달라고 PL에게 보챘다. PL이 나를 소개해 준 아는 동생이다. 일 없이 그냥 가만히 있는게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소중한 시간을 아무것도 안하면서 의미 없게 보내는게 힘들다. 오늘은 화면의 메뉴와 목록 화면들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한 두시간 걸려서 메뉴는 완성, 이제 목록을 만들어 볼 차례이다. 조금 소스 만든 사람의 의도가 보이고 재미가 생기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퍼블리싱 하는 차장이 화면 효과를 넣었는데 그게 좀 기존 코드 구조를 많이 건드려야 하는 거다. 이것 때문에 모든 페이지의 구조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 타협은 없다는 식이다. 시간도 없는데 그걸 하라고 하니 개발자들은 속 터진다. 퍼블리셔가 개발자들 보다 높은 위치라 개발자 의견이 먹힐 리가 없어 보인다. 나는 퇴근 전까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퇴근했다.

3일, 오늘 3일차다. 벌써 3일차라니. 그리고 목요일이다 내일 까지만 일하면 주말이다. 주말이 이렇게 기다려 지다니. 전에 일할 때는 그냥 편한 마음으로 일해서 인지 주말이 사실 기다려 지진 않았었다. 여기 와서는 주말이 이렇게 기다려 지다니 그만큼 힘이 들긴 하는 것 같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루트로 출근했다. 오늘은 나도 약간 늦게 나왔다. 10분 정도. 거의 정시에 도착했다.

오늘 오전부터 오후 조금 시간을 들여서 퍼블리셔가 만들어 놓은 이상한 기능을 위한 확인 작업만 계속했다.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나 싶어서 조금 마음이 불편했다. 뭐 결국 나는 방법을 찾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했는데 다른 프리랜서 한명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나도 나름 차분하게 차근차근 얘기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엄청 흥분해서 다혈질로 얘기했다. 역시 프리의 세계는 정규와 다르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업무가 확실히 구분 되야 좋고 자기 롤(role)이 아닌 부분은 신경 쓰고 싶지도 간섭 받고 싶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오늘 주간 업무 보고를 보냈다. 여기는 신기하게 주간 업무보고를 매주 목요일에 그리고 주간 회의는 화요일에 한다. 업무보고는 아래와 같이 보냈다. 오늘 좀 피곤하다.

  • 10월 18일: 업무환경 세팅 및 소스코드 분석
  • 10월 19일: 소스코드 분석, 메일함 목록 구현, 페이지 전환(Flip) 애니메이션에 따른 오류 확인
  • 10월 20일: 페이지 전환(Flip) 애니메이션에 따른 오류 확인 중

4일, 오늘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매일 오랜 시간 앉아 있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아침에 마시지 않았고 요즘 10월이되서 아침에 해가 늦게 뜨는 이유 등으로 일어나기가 더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다. 힘을 내서 출근하자.

출근하자마자 어제 못한 일이 생각났다. 정규의 마인드로 일하면 힘들 텐데 프리처럼 생각하자고 다짐하지만 자꾸 나는 걸리는 것이 있으면 쉽게 넘어가지 못하겠다. 오늘은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로 했다. 같은 층을 쓰는 임원 방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계속 거슬렸었다. 누군가가 하루 종일 깨지고 있는 것 같은데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에 들어와서 일해보면서 대기업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한쪽 방에서는 항상 짜증 섞이고 다그치며 기본 반말과 반 욕이 섞인 말투가 계속 들려오고 심지어 인격적인 존중은 전혀 없다. 부하직원은 일단 깔고 보는 식이다. 또 다른 방에서는 보고서를 좀 차분한 목소리로 검토해 주고 있는 모양인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여기는 점선, 여기는 실선으로 여기는 잘 보이게 꾸미고 누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하라고 부하직원을 코치하고 있다. 이런 것이 과연 대기업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 들어오려고 다들 좋은 대학과 좋은 스팩을 갖기 위해서 노력했을 텐데 좀 안쓰럽다. 그리고 직원들의 인상도 밝지가 않다. 자녀를 있을 만한 아버지들의 얼굴에서는 힘들지만 가정을 위해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좀 아프다. 나도 이제 이런 것 들을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5일, 이제 새로운 한주가 시작이다. 주말에 쉬다가 다시 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왔다. 역시 출근이 부담이 되기는 하다. 제일 큰 부담은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평균 1시간 10분쯤 걸리는 듯 하다. 오늘은 어제 비가 온 탓에 날씨가 좀 쌀쌀했다. 평소보다 두껍게 입고 출근했다. 여기는 특이하게 직원일 경우 하의는 양복바지 상의는 자연스럽게 난방 또는 와이셔츠가 필수이다. 그래서인지 거의 양복을 입는다. 나는 상의만 난방을 입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 조금 일찍 출근했더니 아침 체조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때 들은이후 여기서 처음 들은 체조음악 같다. 아저씨 구령에 맞춰 체조하는 그런 음악 말이다. 아마 9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알 것이다. 체조는 아마 7시 30분에 시작하는 것 같은데 원래 출근시간이 8시 이지만 임원들은 체조 시간을 기준으로 사원들의 지각 여부를 확인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기 회사도 인터넷 출근(퇴근)부의 도입이 시급하다.

오늘부터는 업무시간에 바짝 집중해서 일하고 칼 퇴근을 하려 한다. 프리랜서로 일해보니 좋은 점은 퇴근할때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최고의 장점이다. 그냥 업무만 잘하면 된다.

6일, 오늘 회식한다. 나는 적당히 하고 나오려고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니 별로 어울릴 만한 것이 없다. 참, 여기 직원들은 담배 정말 많이 피운다. 정시 퇴근시간까지 업무를 마치고 회식장소로 향했다. 회식은 팀 비용이 적다고 조촐하게 진행했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기는 갑 질이 너무 심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여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최대한 잘해 주려고 하고 있기는 하다.

아무튼 나는 1차에서 회식을 끝내고 바로 집으로 왔다. 갑 회사 과장이 용업 업체 차장을 졸라서 내일 점심 쯤 출근을 하기로 했다. 이럴 수가! 이런것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일 일당의 절반은 공짜로 받는 그런 느낌이다. 이상하지만 프리로 일하면서 매일 오늘 일당이 얼마인지 생각하면서 일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더 하고 집에 오니 밤 11시. 내일 늦게 출근할 생각을 하니 좀 덜 피곤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몇가지 메일을 써야할 서류들이 있어서 보내고 새벽 1시쯤 잠들었다.

7일, 이제 7일차다. 일은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내 자신의 발전과 비전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냥 앉아서 하는 막노동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라 좀 싫다. 역시 프리랜서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으로 돈만 보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오늘 도 했다. 기본기가 잘 닦여져 있고 자기 개발도 하고 자기 관리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잘 맞겠지만 그게 아닌 사람이 프리랜서 시장에서 일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줄 뿐이다. 나도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들어서 더 실력 있는 개발자가 된다면 그때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프리랜서로 이런 곳에서 일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잘은 모르지만 내 옆에 그런 것 같은 사람이 앉아 있다. 나이도 좀 많고 내공이 상당한 것 같은 사람 말이다.

오늘은 수요일이라 5시 30분에 가족의 날을 지키고 일찍 퇴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매주 수요일마다 나온다. 안내방송 후에는 심지어 실내의 불도 다 꺼진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는다. 불이 꺼져 어두운 곳에서 그냥 모니터만 보고 일하고 있다. 진짜 너무너무 웃기고 비 효율적이다. 프리랜서는 6시까지 일하기로 계약되긴 했는데 어느 한 사람이 5시 30분에 퇴근했다. 용역업체 임원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계약된 퇴근 시간은 지키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구나 생각했다.

8일, 이제 매일 이걸 기록하기도 힘들만큼 적응한 듯 하다. 별로 쓸 것이 없어졌다. 나는 내 할 일을 다 하고 있지만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이 늦고 있는 바람에 프로젝트가 일정대로 될지가 약간 의심스러워 졌다. 아무튼 이래저래 시간은 갈 것 같다. 매일 퇴근 때가 되면 오늘은 일당은 얼마인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내일 주간 업무 보고를 하고 내일은 중간 점검을 한다고 한다.

9일, 즐거운 금요일이다. 일찍 퇴근 해야겠다. 오늘 업체에서 중간 점검을 한다고 한다. 마치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오전에 한다고 했다가 다시 오후에 하는 걸로 바뀌었다. 회의 하나 잡는 것도 힘들다. 과연 엘리트들이 모인 대기업의 시스템 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렵게 회의 일정을 잡고 우여곡절 끝에 점검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는 자기 면피가 목적인 듯 하다. 다들 기술적으로 깊이가 없어서 개발자이 말하거나 목소리 큰사람이 우기면 다 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없던 일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있는 일을 안된다고 하는 분위기가 크다. 역시 이런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발전이 없겠다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다음 점검은 수요일로 하고 회의가 마무리 되었다.

10일, 또 다시 월요일이다.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월요일은 여전히 힘들다. 오늘은 정말 화장실 가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앉아 있었다. 내 스스로 오늘 하기로 한 분량까지 마무리 하고 싶어서 였는데 결국 마무리는 다 했다. WBS상 이번주까지 할 일이였는데 이미 다 한것 같다. 내일 부터는 좀 더 테스트해보면서 좀 더 견고하게 만들어 봐야겠다. 프리렌서를 하던 뭐를 하던간에 내가 코딩을 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 다는 것을 이번일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마지막 날, 총 2달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면서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하지만 내 방향성과 맞지 않아 당장 다시 하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급한 일이 있을 때 지금 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이런 생활을 오래할 경우 기술적으로 깊이 있는 업무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