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는 베네치아에 사는 바사니오가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서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는 내용이 나온다. 샤일록은 높은 대출 이자를 요구하는 것 외에 목숨을 담보할 것을 요구했다. 그 당시 샤일록이 이와 같이 요구한 이유의 원인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샤일록은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천대 받던 유대계 소수자였다. 성경에 따라 유대인간의 대금업은 불가능하였지만 이방인 기독교인에게 대금업을 하는 것은 가능했다. 두 번째로 당시 금융의 발전이 지체 되어 있었다. 당시 대금업은 매우 영세했고 고객 집단도 다변화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의 분산이 이뤄지지 않아 높은 이자를 요구했으며 대금 회수를 위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금융업의 발전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예전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숫자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숫자 계산은 매우 불편하게 하였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북부 피사에 살던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라는 사람이 아라비아 숫자와 십진법을 최초로 서구에 소개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숫자 계산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결국 피보나치가 살고 있는 피사와 인근 피렌체에 환전상이 모여들었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금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금 세공업자를 중심으로 금융이 발전하였다. 당시 세공업자의 주된 일은 금속을 다듬는 것이었지만, 안전한 금고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이런 안전한 금고에 중요한 물건을 맡기기를 원했다. 이러한 니즈(needs)로 세공업자들은 보조적으로 금화나 은화를 보관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히 주화를 맡기는 것이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영국 모두 금융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주화를 맡긴 예탁 증서만 가지고도 상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닳게 되었고 구태여 환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환전상들은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에 따라 일부만 지급 준비용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대출하여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은행(banco dei medici)이 특히 성장했다. 성장 배경에는 환어음이 있었다. 물론 이런 거래는 교황청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환어음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약속 어음과는 구조가 조금 다르다. 약속 어음은 상품 매입자가 상품 매도자에게 특정 만기까지 지불을 약속하는 증서인데 환어음은 이와 달리 매도자가 매입자에게 추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매도자가 환어음의 발행인이고 매입자가 지급인이다. 이런 환어음의 매입자와 매도자 사이에 메디치 은행이 개입하여 결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환어음이 거래되는 과정 중에는 환위험(foreign exchange risk)가 존재하지만 메디치 은행은 영리하게도 헤지(hedge)를 통해 역방향 무역을 거래함으로써 이런 위험을 줄여 성장해갔다.

메디치 은행 시절의 승인은 교황청이 했다면 현대 은행의 승인은 해당 국가의 권력이 대신하고 있다. 승인 제도가 계속되고 있는 까닳은 이렇게 승인된 은행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특권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비즈니스 구조는 사실 간단하다.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대출로 자금을 운영하여 은행의 수익원인 이것의 이자의 차이를 높이는 것이다. 은행의 본질은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하되 신용 위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신용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은행은 계속 발전해왔다. 이처럼 은행이 발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심사 능력 때문이다.

은행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IT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외견상으로는 은행이 취급하는 것은 돈이지만 돈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정보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최근 IT 기술을 이용해 그동안 많은 관리 비용의 문제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던 가계 금융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은 변환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변환 기능이란 유동성을 선호하는 예금자의 니즈와 수익성을 높이고 싶은 은행의 니즈를 적절히 결합하기 위한 기능이다. 은행은 이런 수익성과 유동성을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이 기능의 기본은 이전 환전상들이 했던 것처럼 큰 수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예금이 동시에 인출될 수 없다는 가정이 있다. 결국 일부 유동적인 자금만 보유하고 나머지는 중, 장기로 운용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은행의 부실이나 부실하다는 소문에 의해서 한꺼번에 예금이 인출되는 뱅크런(bank run)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은행은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한 은행에서 발생한 문제는 여러 다는 은행에 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처럼 연쇄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은행의 위기는 예금 통화의 공급이 크게 수축되고 은행 간의 계좌 이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급 결제 기능에 차질이 빚어져 경제 활동이 마비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1929년 뉴욕 증시의 대 폭락 사태도 은행의 연쇄 도산 사태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일명 글래스 스티걸 법이라 불리는 금융 개혁법으로 일반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을 분리하여 리스크를 줄이고자하는 개혁에 나섰다. 이와 같은 철저한 규제 덕분에 1970년대 중반까지 은행업은 비교적 안정적인 산업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은행의 고객이 이탈하는 위기가 찾아온다. 인플레이션이 만성적으로 심화되면서 각종 예금 상품이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기업들도 회사채나 상업 어음 등 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이 은행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은행들로 살아남기 위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국가는 이런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서 규제를 다시 완화하게 된다. 규제가 사라진 은행들은 대차 대조표에 부담이 없는 부외 산업에 집중하게 된다. 현물환 거래, 선도환 거래 등은 전통적인 부외 산업의 예이다. 은행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신종 부외 산업도 만들어 냈다. 대출 채권 등을 매각하는 것이 신종 부외 산업의 대표적인 한 예이다. 하지만 이런 사업이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2008년 서브 프라임 위기(subprime mortgage crisis)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현대 은행은 규제 완화로 높은 수준의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수익성도 높아졌지만 동시에 은행이 부담하는 위험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지게 되었다. 즉, 현대의 은행은 항상 심각한 구조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대의 은행들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국제 결제 은행의 자기 자본 비율 규제가 국제적으로 도입되고 감독 당국도 위험을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주 집단은 위험 대비 수익률을 높이라는 상충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으므로 은행은 어느 한쪽 만을 따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정부 규제도 마찬가지 이다. 규제를 완화해 수익성을 높이면 안정성이 훼손되고, 반대로 안정성을 높이려 은행을 다시 규제하게 되면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또 다른 위기가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상업 은행의 발전 과정을 통해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비트코인이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 예상해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과 현대 금융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 금융은 소지하기 불편한 주화를 맡기고 맡겨진 자금을 통해 상품을 개발하고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금융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와 규제 완화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이와 전혀 다르다.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이 지나치게 규제 받고 있다는 문제로 생겨났다. 따라서 기존 금융은 안정적인 권력으로 부터 보호 받았고 이를 통해 여러 가지 금융 상품으로 발전하게 된 반면 비트코인은 이러한 보호 장치가 없다. 이것은 최근 해킹 문제가 되었고 결국 파산한 일본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 곡스(Mt. Gox)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과 전혀 다르므로 비트코인의 미래를 기존 금융의 사례로는 판단할 수 없다. 결국 비트코인은 아직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금융의 한 종류가 될 것이다. 기존 금융의 발전 과정과 전혀 다르게 발전해갈 것으로 예상한다.

Reference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이찬근,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