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렵겠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간단한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선 백과사전이 필요했고 적은 분량의 백과사전에서 찾을 수 없을 땐 도서관에 가야 했고 또 작은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을 땐 좀더 큰 도서관으로 가야 했었다. 과연 지금의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은 과연 몇 명이나 이래야만 했던 사정을 이해해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예전처럼 정보검색에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아도 더 쉽게 더 좋은 자료를 검색할 수 있고 그를 여러 가지 형태의 미디어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가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주장했던 하이퍼미디어(Hypermedia)와 그로 이루어진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 생활은 많이 변화했고 또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인터넷의 등장만으로도 우리에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여기서 인터넷의 멀티미디어로서의 역할을 배제한다면 그 영향력을 전부 얘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멀티미디어로서의 인터넷은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빠른 정보검색은 물론이고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보전달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공부할 때 일이다. 네트웍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마침 네트웍을 설명하고 있는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The dawn of the Net’ 이라는 동영상 이였는데 네트웍 패킷이나 라우터, 라우터 스위치 등등 전체적인 네트웍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동영상이었다. 이 동영상은 너무 쉽고 직관적이어서 누구라도 이것을 본 사람이라면 네트웍에 대해 모두 안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대략적인 네트웍에 대해서 안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현상 뒤에 숨겨져 있는 지식들을 모두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전문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멀티미디어적인 환경은 대부분에 사람들에게 보다 폭넓은 지식을 요구하는 사회로 변화하게 되었고 이 같은 지식을 강조하게 되었다. 반면에 깊이 있는 지식은 간과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온 것도 사실 이지만 과도기적인 문화를 겪지 못한 한국의 경우에는 이공계, 특히 소프트웨어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한 명의 개발자가 얕은 지식으로 데이터베이스 설계에서부터 개발 관리자의 역할 때에 따라선 컨설턴트의 역할까지 모두 해야만 하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소프트웨어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누구나 간단한 교육만으로 진입 가능할 수 있는 일명 청바지산업이 아니라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받는 사람만이 가능한 산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과 만을 중시하고 넓고 얕은 지식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한 한곳에 깊은 지식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IT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이런 멀티미디어적인 환경을 보다 잘 활용해 전처럼 중국 발 해킹으로 허술하게 뚫려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표준 HTML 문법조차 지키지 못해 다른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외국고객들을 놓치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하겠다.

우리도 이제 38세가 되면 38선을 넘는다느니 퇴직해야 한다느니 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보다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좀더 깊은 전문성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쓰는 그런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백발을 휘날리며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쓴다거나 한국사람 최초로 ‘튜링상(Turing Prize)’을 수상하는 일도 이미 잘 갖추어진 멀티미디어 환경을 잘 활용하고 발전시켰을 때 이런 일도 우리에게는 꿈 같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